작년 11월 킥스타터에 흥미로운 제품이 등장했다. 제품명 Plan V는 건전지를 이용해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도구로 긴급한 상황에 쓸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다. 언젠가 한 번씩 생각해봤던 제품이었고 바로 후원했다. 하지만 펀딩이 완료된 후 제품 생산에 대한 감독 부실 및 재료 가공의 문제로 계속 배송이 늦어졌고 1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제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1. 첫 인상
  2. 사용기
  3. 여담

첫 인상

제품 상자를 보는 순간, 내가 이걸 24달러를 주고 구매했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싸구려 종이 상자에 그마저도 흠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작사 측에선 공장에서 직접 가져와 이 정도의 흠집은 있을 수 있다고 강조하던데 솔직히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제품을 열면 정말 설명서 한 장과 제품이 끝. 크게 강조할 만한 것들은 없다.

제품의 촉감은 단단하면서도 끈적함이 있는 느낌이었다. 살짝 달라붙는 느낌도 좋진 않지만, 문제는 지문이라든지 보기 흉한 때, 먼지가 붙기 너무 쉬운 소재라는 점이다. 조금 문질렀을 뿐인데 이런 때가 나온다는 건 소재 선택에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그 외 제품 자체는 테스트하기 위해 뜯어본 탓인지 깨끗하지 않아서 새 제품의 신선함을 찾을 수 없었다.

마감도 칭찬하기 어렵다. 라이트닝 포트의 주변에 지저분하게 남은 자국은 보기 흉했다. 좀 더 제품에 신경을 쓸 수 있었을 텐데 제작자의 이런 무경험이 얼마나 큰 손실인지 느끼는 부분이다. 조금 다행스럽다고 느끼는 건 상자엔 적혀있지 않지만, MFi 인증은 받았다는 점이다. 가지고 있는 정품 커넥터와 비교하니 확실히 포트 부분이 정품과 같았다. 애플과 질질 끌었던 타협의 과정 속 이 점은 칭찬하고 싶다.


사용기

비교를 위해 듀라셀, 에너자이저, 플러스메이트 제품을 구매했다. 가장 저렴한 백셀 제품을 찾아보았으나 이마트에서도 구하기 어려워 포기했다. 세 건전지를 사고나니 샤오미 보조배터리 가격을 넘는다. 배터리 가격만 보통 3천원대 이상이니 정말 긴급 상황이 아니면 쓰고 싶지 않겠다.

가격이 가장 비싼 에너자이저부터 시험해보았다. 테스트 기기 아이폰5는 완전방전 상태로 진행하였고, 대략 27% 정도에서 충전이 멈추었다. 충전 시간은 대략 1시간 30분. 긴급한 상황임을 살피면 충분한 수치다. 똑같은 방식으로 듀라셀, 플러스메이트 제품을 테스트했다. 듀라셀은 약 35%, 플러스메이트도 비슷한 수치가 나왔다. 4천원이 넘는 에너자이저의 가성비가 심히 의심스럽다.

방수도 가능하다고 주장해서 시험했다. 약 30분간 대야에 잠기도록 담그고, 약 5분간 차가운 물로 씻었다. 방전 문제를 막기 위해 약 3시간 완전히 말리고 시험을 하니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방수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참고로 정품 케이스 등 포트가 작게 뚫린 케이스는 제품의 크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는다. 굳이 벗기고 써야 하는 과정이 불편하다. 다만 제품 자체는 튼튼하게 꽂히기 때문에 떨어질 걱정은 없어 보였다.


여담

솔직히 크게 만족한 제품이 아니다. 제품 마감 상태도 아쉽고, 제품에서 건성도 느껴졌다. 완전한 제품이라기보다 프로토타입 정도의 느낌이다. 처음엔 구상했을 땐 매력적인 제품이라 느꼈고 그래서 후원을 했지만, 직접 그 제품을 만나고 나니 확 다가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평상시 자주 쓸 물건은 전혀 아니기에 가성비를 논한 것은 우스울 수도 있다. 사실 그렇기에 이 제품의 선택은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단순히 보조 배터리 대용으로 구매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자주 물건을 놓고 온다든가, 급하게 일 처리를 해야하는 사람들에겐 이것만 한 제품이 아직 더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나 휴대폰을 많이 만지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경쟁작이라고 느껴지는 The Nipper는 킥스타터에서 막 모금을 끝낸 상태이다.

제품 자체는 1세대의 아쉬운 느낌을 벗어나지 못했고, 이 제품의 효용도 의문이라 이 제품의 가치에 대해선 좀 더 생각해본다. 확실한 건 가격 측면의 장점이 없다면 이 제품이 가지는 의의는 확 다가오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아무리 비상용이라지만 이 가격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물론 킥스타터 가격이 이 정도였으니 더 내려갈 것이라 믿진 못하겠다.